두번째 휴식
Parar para repensar a vida - 삶을 재정비하기 위해 멈추다
포르투갈 여행의 두 번째 도시인 나자레 근처 지역 에어비앤비 숙소 마당에서 햇볕을 쬐고 있다. 이전 직장의 마지막 출근일 이후 47일째, 퇴사일 기준으로 9일째 그리고 여행을 시작한 지 5일째 되는 평화로운 오전이다.

처음 만나는 사람들과 나의 커리어에 대해 이야기할 때 레퍼토리 중 하나는 첫 직장을 그만두고 가진 1년 반의 뉴질랜드 생활이다. 신입사원으로 입사해서 6년, 내가 마주하는 업무에 익숙해지고 조직 내에서 가치를 인정받으며 커리어 측면에서 행복기를 보내던 그때 잠시 멈추고 뉴질랜드로 떠났다. 뚜렷하게 이직을 하고 싶었거나 창업을 하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말리려던 주변 사람들이나 퇴사 면담을 진행했던 조직 리더들 입장에서는 난감했을 것 같다. 회사 내에서는 다른 하고 싶은 게 없고 그만둔다고 하면서, 이직은 안 하는데 다른 할 거는 정한 게 없다고 하니 말이다. 그런데 실제로 그랬고 이런 생각은 10년 뒤인 현재 이전 직장을 그만둘 때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무엇을 해야겠다는 결심은 없지만 더 나아가지 못했고 멈추고 싶었다.
10년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고 다시 멈추게 만드는, 무언가에 대한 두려움은 무엇일까. 스스로 진단해 보면 키워드는 자기 주도성의 결여와 자기 확신 부족이다. 이 두 가지가 결여된 채로 나아가면 스스로 방어기제가 발동하고 자가 진단을 시작한다. 자가 진단이라고 해봐야 '앞으로 어떻게 하면 좋을까?' 하는 자문인데 애초에 질문에 대한 답이 없기 때문에 답답하고 지속되면 두려움이 생겨난다. 자기 주도성과 자기 확신에 둘 다 自(스스로 자) 자가 있어서 이 상황에 대한 답은 외부에 없고 내부에서 찾아야 한다는 생각에 반복적으로 자문하고 스스로에게 지쳐간다. 그런데 적어도 나에게는 자기 주도성과 자기 확신은 단어의 의미와는 달리 나의 의지보다는 주변 환경과 소통, 그리고 그로부터 얻는 확인이 더 크다는 것을 시간이 지나면서 알게 되었다. 남들로부터의 인정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움직이는 동력의 차원에서 그것들은 중요하다. 그렇기 때문에 어느 순간부터는 내가 변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속한 상황을 변화시켜 보려는 결론, 잠깐의 쉼을 찾게 된 것이다.
10년 전에는 혼자이기 때문에 이러한 결정을 하는 것이 쉬웠고 누군가를 설득시켜야 할 필요도 없었지만, 10년이 지난 현재는 상황이 달라졌다. 나는 사랑하는 아내를 만나서 결혼을 하고 나와 아내밖에 모르는 강아지도 한 마리 기르고 있다. 커리어 측면에서도 임베디드 소프트웨어 엔지니어에서 데이터 관련 직군으로 업무를 변경하고 리더십 경험을 거치며 다양한 경험을 쌓고 더 많은 책임감을 지고 있었다. 이전과 같은 결정을 내리기 어려웠을 수도 있었지만 이런 나를 절대적으로 이해하고 응원해 주는 아내 덕분에 오히려 같이 쉬면서 알 수 없는 미래 앞에 멈춰서서 현재에 충실하며 과거를 열심히 잊고 비워내는 일을 하고 있다.
뉴질랜드에서 지내며 경험적으로 알게 된 두 가지가 있다.
- 수입이 없다는 것에 대한 공포는 예상보다 크다.
- 내가 시간을 쏟아야 하는 일이 없다는 것에 대한 공포 역시 빠르게 찾아온다.
첫 번째, 수입적인 측면에서는 여전히 준비해 둔 게 없고 대책이 없다. 최대한 덜어내고 아끼면서 지내는 수밖에 없는 것 같다. 아내와 회사를 그만두고 포르투갈 여행을 준비하면서 가장 많이 들었던 이야기가 두 분이 경제적 자유를 얻었냐는 것이었는데, 그럴 때마다 기대에 충족하는 답변을 못 드리게 된다. 그동안 열심히 벌어서 돈 걱정 없이 즐길 계획을 설명하는 것도 재밌는 일이겠지만 지금으로서는 "하하 그러지 못해서 큰일이네요." 하고 넘어가는 수밖에 없다. 두 번째, 일이 없다는 것에 대한 공포는 나의 쓰임새나 효용성에 대한 고민에서 시작된다. 직업이 있을 때는 일을 하면서 그런 욕구들을 충족해 오다가 일이 없어졌을 때 그 에너지의 방향을 잃고 혼란스러워했다. 뉴질랜드에 있을 때는 우연찮게 현지에서 석사 과정을 시작하고 한국 회사와 원격으로 일을 하며 몰입하는 시간을 가졌다. 현재는 비교적 준비가 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이전에 비해 비어 있는 시간을 즐길 수 있는 여유도 생기고, 수년간 해 온 크로스핏 취미도 있어서 아침에 눈을 뜨면 운동을 통해 적어도 오늘 하루 무엇을 시도할지에 대한 목표와 작은 성취감을 스스로 만들어낼 수 있게 됐다.
사람들에게 뉴질랜드 이야기를 해줄 때 결론을 "그때의 경험으로 커리어 관점에서 직무 전환을 할 수 있었고, 그곳에서 겪은 사람들과 경험을 통해 이전 같았으면 닿을 수 없는 새로운 기회들을 갖게 되었다"고 말한다. 이번 여행에서도 열심히 쉬고 비워내고 새로운 경험들을 채워나가며 앞으로의 10년을 힘 있게 나아갈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