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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투갈 여행 소소한 사건사고 #2

세 번의 탈주극과 도루강 다이빙, 그리고 대서양 앞 배변 사건까지. 하루와 함께한 여행의 아찔했던 순간들

들어가며

하루와 함께한 포르투갈 여행은 즐거움으로 가득 찬 시간이었지만 아찔했던 순간도 있었다. 대표적으로는 가출 사건이다. 이게 처음은 아닌 것이, 한국에서도 서너 차례 집 밖으로 나간 전력이 있어서 로버트와 조심하자고 했지만 결국 발생하고 말았다. 탈주극과 더불어 말썽부린 몇 가지 일화를 남긴다.

탈출 각을 보고 있는 하루

탈출 각을 보고 있는 하루

2026년 3월 15일 하루 탈출 #1

리스본에서 차로 한 시간 정도 거리에 아토우기아 다 발레이아(Atouguia da Baleia)라는 동네에 머물렀다. 포르투갈 서쪽 해안 마을인데, 지명의 뜻은 고래의 망루/정착지로, 16세기경 이 지역 해안에 고래가 떠밀려와서 지어진 이름이라고 한다. 숙소 주변은 논밭뿐이고 걸어서 10분 정도 나가면 카페와 상점이 있는 작은 번화가가 있고, 거기서 20~30분을 더 가면 해안에도 갈 수 있는 시골이었다. 이 주변에 볼거리가 있어서 찾아온 건 아니고 저렴한 숙소를 찾다 보니 오게 됐다.

아토우기아 다 발레이아 집 주변

여기서 잃어버리면 답이 없다

하릴없는 일요일, 낮잠을 자고 일어났는데 로버트가 보이지 않았다. 하루도 방에 없어서 같이 산책을 나갔구나 싶었는데, 놀란 표정의 로버트가 집으로 돌아오며 말했다.

"하루가 탈출했는데 길에서 잡아왔어!"

하루는 손을 쓸 줄 알아서 밀거나, 손잡이를 아래로 내리면 열리는 문은 열 수 있다. 옆으로 슬라이딩 해야 하는 문 같은 경우는 손과 코로 열 수 있다. 내가 자고 있는 틈을 타서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나 보다.

로버트 말로는 혼자 산책 중이었는데 마을 초입에서 익숙한 개가 길 저편에서 자신을 마주하고 있었다고 한다. 듣기만 해도 식겁할 상황이었다. 만약 하루가 흥분해서 사방이 논밭인 그 자리에서 어디론가 달려가기 시작하면 다시 잡을 수 있다는 보장이 없었다. 다행히 로버트가 하루를 자극하지 않고 침착하게 다가가 잡아온 모양이다.

그 뒤로 우리는 방을 드나들 때 하루가 있으면 열쇠로 문을 잠그고 창문을 닫고 다녔다.

집 문고리

이런 문은 쉽게 연다

2026년 3월 22일 하루, 도루강으로 뛰어들다

도루강을 따라 양쪽 산비탈에는 계단식 포도밭이 조성되어 있다. 낮에는 덥고 밤에는 서늘해 포도가 진하게 익고 당도도 높다고 한다. 마을 전체가 포도밭이다 싶은 세이쇼 드 안시아에스(Seixo de Ansiães) 지역 어느 와인 농장에서 2주 정도 지냈다.

주인 할아버지는 집에 카약이 있으니 언제든지 타라며 탈 수 있는 위치까지 친절히 설명해 주었다. 도루강에서 뱃놀이라니, 낭만 넘치는 이 액티비티를 위해 날을 잡고 나, 로버트 그리고 하루 셋은 용감하게 장소로 향했다. 카약이 놓여 있는 강가 주변 공원 같은 곳은 놀랍게도 주인 할아버지의 사유지라고 한다. 우리가 도착했을 때는 청년 무리들이 맥주와 음악을 즐기면서 놀고 있었는데, 주인 할아버지는 쓰레기만 잘 치우면 남이 사용하건 말건 신경을 쓰지 않는 것 같았다.

조심스레 카약을 띄우고 로버트, 하루, 얀 순으로 자리를 잡고 본격적으로 노를 저으며 강 안쪽으로 이동하던 찰나, 배 위에서 불안불안해하던 하루가 강으로 뛰어들었다. 말도 못하는 짐승에게 왜 그랬냐고 물어보진 못했지만, 하루가 너무 자연스럽게 강으로 뛰어들어서 '뭐야, 왜 저래?' 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도루강에서 카약킹

도루강에서 카약킹

다행히 목줄을 하고 있어서 강에서 버둥거리는 하루를 카약으로 끌어올렸지만, 하루나 우리나 놀라긴 마찬가지였다. 하루는 우다다다 물을 털고, 우리는 놀란 마음을 쓸어내리며 웃기도 하며 다시 뱃놀이를 즐겼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강으로 뛰어든 건 하루뿐만이 아니었다. 아마 하루와 호들갑을 떨다가 내 폰도 도루강에 빠뜨린 것 같다. 외국에서, 그것도 깡촌에서 폰을 분실하다니 뒷수습하는 데 꽤 고생이었지만, 그래도 하루도 우리도 안 다치고 재밌게 놀았으면 됐지 하고 울면서 추억해 본다.

아이폰 찾기 화면

나의 아이폰 찾기에서 확인한 폰 위치

2026년 3월 28일 하루 탈출 #2

자연 속에서 8박 9일을 보낸 뒤 차를 타고 단숨에 스페인 북부로 넘어갔다. 성지순례길로 유명한 라코루냐(A Coruña)의 어느 내리막길 끝자락, 차도 바로 앞에 붙어있는 에어비앤비 숙소에 체크인을 했다.

큰 짐들을 차에서 꺼내 집 안으로 들이고 짐 정리를 하던 중 얀과 로버트가 한눈을 판 사이 하루가 문을 열고 나갔다. 방금 도착해서 주변 길도 모르고, 집 앞길이 내리막이라 차들이 빠르게 달려서 하마터면 사고로 이어질 수 있는 위험한 상황이었다. "하루!" 외치며 쫓아갔는데 다행히 멀리 가지 않고 앞마당 주차된 차 옆에 서 있던 걸 잡아왔다. 자유롭게 뛰어다니던 산과 언덕, 도루강 산책길을 그리워하며 돌아가고 싶었던 걸까? 어쨌든 이후에는 집 안에 있어도 문을 이중으로 잠그고 두 번 세 번 체크하는 피곤한 생활을 했다.

하루 도주로

도주로

2026년 4월 8일 대서양을 바라보며

포르투(Porto) 숙소에는 세탁기와 건조기가 있지만 여러 세대가 살기도 하고, 비가 며칠째 오면 빨래가 적체되곤 했다. 그날도 비가 오고 며칠치 빨래가 쌓인 걸 보며 안 되겠다 싶어 근처 코인 세탁소에서 빨래를 하기로 하고, 하루와 함께 빨래 자루를 들고 밖을 나섰다.

골목길에 주차가 어려울 것 같아서 한 블록 앞 해안길에 주차를 하고 나오는데, 눈앞에 펼쳐진 대서양과 탁 트인 해변을 바라보며 잠시 구경을 하고 있었다. 하루는 파도 소리를 무서워하긴 하지만 바다 멀찌감치에서 산책하는 걸 좋아한다. 좋아하는 건 행동을 보면 알 수 있는데, 바다를 바라보고 바닷바람 냄새도 맡고 지나가는 사람도 신기한 듯 구경하면서 꼬리를 살랑거리기도 한다. 그러다 신이 났는지 길 한복판에 무지막지하게 배변을 하기 시작했다.

Foz 바다

아름다운 Foz의 바다

도대체 뭘 얼마나 먹었는지 모를 정도로 놀라운 양이었는데, 아차, 나오면서 빨래 자루에 신경 쓰느라 배변 봉투를 들고 나오지 않은 것이었다. 일단 바닥에 싸질러 놓은 것들을 지나가는 사람이 못 보도록 내가 서서 가리고 (안 가려짐)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고민했다. 그런데 거짓말처럼 저 멀리서 할머니 한 분이 걷는 게 편치 않아 보임에도 내 쪽으로 걸어오시는데, 왜인지 모르지만 한눈에 나에게 오고 있다는 걸 직감했다. 차 안에서 할아버지 할머니가 바다를 구경하고 있었는데 당황해하는 나를 본 모양이다. 차 안에 간식을 드신 것 같은데, 손에는 휴지와 박스, 종이 이것저것 어쨌든 뭔가를 주울 수 있게 도울 수 있는 것들을 잔뜩 들고 나에게 말없이 웃으며 건네주었다.

몸을 납작 굽히고 "Obrigado(감사합니다)"를 연신 외치며 하루 배변을 처리하고, 할머니 차로 찾아가 다시 고맙다고 꾸벅 인사를 드렸더니 차 안에서 웃으며 따봉을 날려주셨다. 여행을 하며 만난 포르투갈 사람들 모두 선하고 친절했는데, 나도 누군가 곤경에 처하면 망설임 없이 도와줘야지 다짐을 했다. 드넓은 대서양 앞에서 인류애를 느낀 나와 시원하게 싸지른 하루, 모두 기억에 남는 순간 중 하나였다.

5월 둘째 주 어느 날 하루 탈출 #3

포르투에서 묵은 숙소에는 마당이 있어서 게스트가 없는 시간에는 하루를 마당에 풀어놓곤 했다. 로버트가 요가하러 가고 나는 마당 선베드에 누워 쉬고 있었는데, 갑자기 집주인 호세가 "얀!" 하는 소리에 돌아보니 집 현관문이 열린 채로 하루도 호세도 보이지 않았다.

호세가 문을 열고 밖에서 안으로 들어오려는 그 짧은 사이 하루가 뛰어나갔고, 그걸 본 호세도 쫓아가고 나도 뒤이어 쫓고, 갑자기 포르투 조용한 동네 포쉬(Foz)에서 술래잡기가 시작됐다. 뛰면서 '아, 어떻게 잡지' 전략을 고민하는데 하루가 뛰어가는 방향을 보니 왠지 안심이 됐다. 매일 아침 루틴 중 하나가, 내가 운동하고 와서 하루 산책을 나가면서 로버트는 요가원에 가고, 나와 하루는 해변까지 산책 후 집에 돌아오는 것이었는데, 내달리는 하루의 발걸음이 요가원을 향하고 있었다.

역시나 요가원 앞에서 하루와 사색이 된 호세가 대치 중이었고, 나는 호세에게 나에게 맡기라며 아무 내색도 하지 않고 (호들갑 떨면 하루가 도망감) 하루 옆으로 지나가듯 다가가 잡고 집으로 연행해갔다. 요가하고 돌아온 로버트에게 일어난 일을 말해줬는데, 자기가 있는 요가원 근처에서 와서 머물러 있던 하루 이야기에 무척 감동받은 눈치였다.

하루 탈출 루트

요가원으로 질주

마치며

여행을 마치고 돌아와서 로버트와 여행 이야기를 하면 빠지지 않고 하루 이야기를 한다. 하루가 말도 안 듣고 사고도 치긴 했지만 함께 만든 행복한 추억이 더 컸고, 오래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 한국에 와서 빠르게 일상으로 적응한 사람들과 다르게 하루는 밤에도 잘 못 자고, 낮에는 베란다 햇볕 드는 자리에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고 있다. 정작 지난 여행을 가장 기억하고 그리워하는 건 하루일지도 모른다.